9. 살수대첩과 안시성 전투: 수·당 제국을 막아낸 고구려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외세 침입이 많았던 것 같아요. 고구려 시대부터 조선까지 위에서는 중국, 아래에서는 일본. 이 한반도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이렇게 자꾸 침략을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수나라도 그렇고 당나라도 그렇고, 세계 최강 제국들이 왜 그렇게 고구려를 굴복시키려 했는지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6세기말에서 7세기 초, 동아시아의 정세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맞이합니다. 분열되어 있던 중국 대륙을 통일한 통일 제국 '수(隋)'나라와 그 뒤를 이은 '당(唐)'나라가 등장한 것입니다. 천하의 중심을 자처하는 중국의 거대 제국들은 눈엣가시 같던 동북아시아의 강자 고구려를 굴복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결코 호락호락하게 무릎 꿇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무려 113만 명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수나라를 살수에서 수장시킨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그리고 당나라 제일의 명군 태종의 파상 공세를 끝끝내 막아낸 양만춘 장군과 백성들의 '안시성 전투'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위대한 승리의 기록입니다. 이 글은 거대 제국의 침략에 맞서 한반도의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했던 고구려의 치열했던 수성전과, 그 찬란한 승리 뒤에 드리워진 국력 소모라는 짙은 그림자를 함께 조명합니다.

수나라의 통일과 고구려의 선제공격
589년, 수나라가 수백 년간 분열되어 있던 중국 대륙을 마침내 통일했습니다.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게 된 수나라는 주변국들에게 신하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던 고구려의 영양왕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수나라가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말갈족 병사 1만 명을 이끌고 요하 강을 건너 수나라의 군사적 요충지인 요서 지방을 먼저 선제공격하는 대담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수나라 문제(수나라의 첫 번째 황제)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으나, 홍수와 전염병으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퇴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수 양제는 고구려 정벌을 자신의 최대 과업으로 삼고, 인류 전쟁사에서 보기 드문 엄청난 규모의 원정군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살수대첩: 113만 대군을 수장시킨 을지문덕의 지략
612년, 수 양제는 무려 113만 명이 넘는 전투병과 그 두 배에 달하는 보급 부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군대가 출발하는 데만 40일이 걸렸을 정도의 압도적인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요동성을 비롯한 튼튼한 성벽에 의지해 굳게 방어하며, 적이 먹을 식량과 우물을 모두 없애버리는 '청야 전술'로 수나라 군대의 힘을 뺐습니다. 요동성 하나를 수개월째 함락시키지 못하자 초조해진 수 양제는,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30만 명의 별동대를 주어 곧바로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이 별동대를 상대한 인물이 바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었습니다. 그는 일부러 져주면서 후퇴하는 척(거짓 항복)하여 수나라 군대를 평양성 깊숙이 유인했습니다. 보급이 끊겨 굶주리고 지친 수나라 군대에게 을지문덕은 조롱 섞인 시 한 수를 보냅니다. "신통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통달했도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기를 바라노라(여수장우중문시)." 적의 의도를 간파당하고 식량마저 바닥난 수나라 별동대는 황급히 퇴각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살수(청천강)를 반쯤 건너고 있을 때, 매복해 있던 고구려군이 둑을 터뜨리고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30만 명의 별동대 중 살아 돌아간 자는 불과 2,7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인 살수대첩입니다. 무리한 고구려 원정으로 국력을 탕진한 수나라는 결국 건국 37년 만에 멸망하고 맙니다.
당의 등장과 천리장성, 그리고 안시성의 기적
수나라의 뒤를 이어 들어선 당나라도 초기에는 고구려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했으나, 당 태종이 즉위하면서 다시 팽창 야욕을 드러냈습니다. 고구려는 당의 침입에 대비해 부여성에서 비사성에 이르는 거대한 방어선인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나라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무장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온건파 귀족들과 영류왕을 제거하고, 보장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내세운 뒤 스스로 최고 권력자(대막리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연개소문의 정변을 구실로 645년, 당 태종은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수나라의 실패를 거울삼아 철저히 준비한 당나라 군대는 요동성, 백암성 등 고구려의 핵심 방어 기지들을 차례로 무너뜨렸습니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던 당 태종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요동의 작고 단단한 요새, 안시성이었습니다.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이름은 야사로 전해짐)과 백성들은 하나로 뭉쳐 당나라군의 맹공을 두 달 넘게 버텨냈습니다.
당 태종은 성을 넘기 위해 안시성 옆에 성벽보다 높은 거대한 흙산(토산)을 쌓는 전대미문의 전술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흙산이 완성될 무렵, 폭우로 인해 흙산의 일부가 무너져 안시성 성벽을 덮쳤고, 고구려군은 그 틈을 타 재빠르게 흙산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수개월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매서운 요동의 겨울 추위가 다가오자 식량마저 바닥난 당 태종은 결국 퇴각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 태종은 죽을 때 "다시는 고구려를 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고구려의 저항에 깊은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민족의 방파제, 그러나 남겨진 깊은 상처
수나라와 당나라라는 당대 세계 최강의 제국들을 연이어 물리친 고구려의 승리는 단순히 고구려 한 나라의 국가적 생존을 넘어선 중대한 의미를 가집니다. 만약 고구려가 요동에서 무너졌다면, 한반도 남부의 백제와 신라 역시 중국 통일 제국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중국의 변방사로 편입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고구려는 한반도 전체를 지켜낸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승리의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도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거대 제국과의 쉴 새 없는 총력전은 고구려의 국력과 백성들의 삶을 바닥까지 갉아먹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피를 흘렸고, 농토는 황폐해졌습니다. 더욱이 강력한 철권통치로 나라를 이끌던 연개소문이 죽은 후, 고구려 지도층은 극심한 권력 투쟁에 빠져들며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밖으로는 거대 제국의 파상 공세를 훌륭하게 막아냈지만, 안으로부터 곪아 들어가던 고구려는 다가오는 나당 연합군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서서히 멸망의 운명을 마주하게 됩니다.
을지문덕의 계략도, 안시성의 처절한 사수도 정말 대단했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고구려가 그렇게 혼자 다 버텨준 덕분에 백제와 신라가 그나마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구려가 한반도 전체를 위해 혼자 다 짊어진 셈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