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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al 어원, 시원한 여름 신발이 고작 '나무 판자' 조각이었다고?

by purevanillacookie 2026. 1. 9.

무더운 여름이 오면 답답한 운동화는 벗어던지고, 발가락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샌들(Sandal)'을 찾게 됩니다. 가볍고 통기성이 좋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여름철 필수 아이템이죠. 휴양지 패션으로도, 장마철 실용적인 신발로도 샌들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련된 패션 아이템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아주 투박하고 원시적인 '나무판자'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심지어 고대에는 이 신발을 신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자유인''노예'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오래된 신발 중 하나인 샌들의 역사와, 그 속에 숨겨진 고대인들의 지혜를 밟아가 보겠습니다.

Sandal 어원, 시원한 여름 신발이 고작 '나무 판자' 조각이었다고?

1. 그리스어 'Sandalon' : 발밑에 대는 널빤지

샌들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산달론(Sandalon)'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아주 단순 명료합니다. 바로 '나무판자' 혹은 '널빤지'를 의미합니다.

고대인들에게 신발의 개념은 지금처럼 발 전체를 감싸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땅바닥이나 거친 자갈로부터 발바닥 화상을 막기 위해, 발밑에 '나무판자(Sandalon)' 하나를 대고 가죽 끈으로 묶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즉, 샌들의 시초는 '신는 것'이라기보다는 발바닥에 '매다는 판자'에 가까웠습니다. 재료도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 파피루스(갈대), 가죽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2. 신는 자와 벗은 자 : 권력의 상징

오늘날 샌들은 누구나 신을 수 있는 편한 신발이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철저한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뜨거운 돌바닥을 맨발로 걷는 고통은 오직 '노예'들의 몫이었습니다. 반면, 시민권을 가진 자유민과 귀족, 그리고 군인들만이 '산달론'을 신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면, 귀족들은 멋진 가죽 끈이 달린 샌들을 신고 있지만, 시중을 드는 하인들은 모두 맨발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역시 샌들을 사랑했습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신은 날개 달린 신발 '탈라리아' 역시 샌들의 일종이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황금 샌들을 신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샌들이 단순한 보호 장구를 넘어 신적 권위와 아름다움을 상징했음을 보여줍니다.

3. 글레디에이터와 로마 군단의 발

샌들이 역사적으로 가장 크게 활약한 무대는 바로 로마 제국의 정복 전쟁이었습니다. 로마 군단병들은 '칼리가(Caliga)'라고 불리는 군용 샌들을 신었습니다.

이 샌들은 두꺼운 가죽 밑창에 쇠못을 박아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가죽 끈을 발목 위까지 단단하게 묶어 기동성을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통풍이 잘 되어 행군 시 발에 땀이 차지 않고,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르는 이 샌들 덕분에 로마군은 유럽 전역을 누비며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의 이름도 어린 시절 이 군용 샌들을 신고 다녀서 붙은 '꼬마 샌들'이라는 별명이었습니다.)

4. 마치며 : 가장 원초적인 자유

나무판자 한 조각에서 시작된 샌들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치며 코르크, 고무, 가죽 등 다양한 소재로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발등을 덮지 않고 끈으로 묶는다는 기본 구조만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샌들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신발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도 동시에 맨발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여름, 샌들을 신고 거리를 걸을 때 발바닥에 닿는 느낌을 음미해 보세요. 수천 년 전, 뜨거운 대지 위를 당당하게 걸었던 고대 그리스 자유인들의 특권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