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프로그램부터 학교 시험, 그리고 친구들과의 내기까지. 우리는 알쏭달쏭한 문제를 풀며 정답을 맞혔을 때의 짜릿함을 즐깁니다. 바로 '퀴즈(Quiz)'입니다. 현대인들에게 퀴즈는 지식과 상식을 테스트하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익숙한 단어인 Quiz가, 사실은 사전에 등재된 유서 깊은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아니라, 18세기 아일랜드의 한 술 취한 극장 주인이 벌인 '장난'과 '내기'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급조된 '의미 없는 낙서'였다는 놀라운 전설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무의미했던 네 글자가 어떻게 '지식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1791년 더블린의 밤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 그 흥미진진한 탄생 비화를 추적해 봅니다.

1. 1791년 더블린, 술김에 시작된 무모한 도박
이야기의 무대는 1791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입니다. 당시 더블린의 로열 극장(Theatre Royal)에는 '리처드 댈리(Richard Daly)'라는 지배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 입담이 좋고 내기를 즐기는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댈리는 거나하게 취해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습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뜻도 없는 가짜 단어를 24시간 안에 더블린 시민 전체가 떠들게 만들 수 있네! 심지어 그 단어가 사전에 실리게 만들 수도 있지!"
친구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었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신조어를, 그것도 인터넷이나 SNS도 없던 18세기에 단 하루 만에 유행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거액의 돈을 걸고 내기를 시작했습니다.
2. 도시를 뒤덮은 의문의 네 글자, Q-U-I-Z
내기가 성립되자마자 댈리는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그는 극장 직원들과 동네의 부랑아(Urchins)들을 닥치는 대로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빨간색 분필과 페인트 통을 쥐여주며 은밀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오늘 밤, 더블린 시내의 모든 벽, 셔터, 담벼락, 보도블록에 이 네 글자를 적어라. 'Q-U-I-Z'!"
그날 밤, 댈리가 고용한 '낙서 부대'는 경찰의 눈을 피해 더블린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미친 듯이 낙서를 했습니다. 성당 문 앞부터 술집 벽, 귀족의 저택 담벼락까지, 도시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Q, U, I, Z라는 알파벳으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3. "도대체 퀴즈가 뭐야?" 혼란에 빠진 아침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더블린 시민들은 경악했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정체불명의 단어 'QUIZ'가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정치적인 암호인가?", "새로 나온 상품 이름인가?", "종교적인 계시인가?"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물었습니다. "자네, '퀴즈'가 뭔지 아나?"
당연히 아무도 알 턱이 없었습니다. 댈리가 방금 지어낸 아무 의미 없는 단어였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그날 하루 종일 더블린 시내는 온통 '퀴즈'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결국 댈리는 내기에서 승리하여 두둑한 배당금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기이한 일', '괴짜', '장난'을 뜻하던 이 단어는, 사람들이 서로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과정에서 점차 '수수께끼'나 '질문'이라는 의미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4. 팩트 체크 :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이 극적인 이야기는 퀴즈의 어원을 설명할 때 가장 유명하고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이야기가 1836년경에 만들어진 '도시 전설(Urban Legend)'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1791년 이전에도 'Quiz'라는 단어가 드물게 사용된 기록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호기심 많은'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Inquisitive'에서 앞뒤를 자르고 'Quiz'만 남겨서 썼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고, 라틴어 학교에서 학생들이 구두시험을 뜻하는 'Qui es? (너는 누구냐?)'를 빠르게 발음하다가 생겨났다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리처드 댈리의 내기 일화만큼 퀴즈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점에서, 댈리의 장난은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퀴즈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5. 마치며 : 호기심이 만든 언어
어원이 술주정뱅이의 장난이었든, 라틴어의 변형이었든, '퀴즈'라는 단어가 가진 힘은 명확합니다. 바로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질문을 받으면 답을 찾고 싶어 합니다. 18세기 더블린 시민들이 벽에 적힌 낙서를 보고 "저게 뭐지?"라고 궁금해했던 그 마음이, 오늘날 우리가 십자말풀이나 TV 퀴즈 쇼에 열광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퀴즈를 하나 내보세요. 그 순간 여러분은 일상을 호기심으로 채우는 21세기의 리처드 댈리가 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