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디를 가든 통하는 만능열쇠이자, 현대 자본주의의 강력한 상징, 바로 미국 '달러(Dollar)'입니다. 뉴스에서는 매일 원-달러 환율을 보도하고, 국제 유가와 금값도 모두 달러로 매겨집니다. 말 그대로 세계 경제의 혈액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막강한 'Dollar'라는 단어는 과연 어디서 왔을까요? 당연히 미국에서 만들었거나, 적어도 영미권에서 유래했을 거라 짐작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기원을 찾아가 보면, 미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동유럽 체코의 깊은 산골짜기에 다다르게 됩니다.
오늘은 시골 광산의 은화가 어떻게 대서양을 건너 세계를 지배하는 기축통화가 되었는지, 그 파란만장한 화폐의 여행기를 들려드립니다.

1. 은광의 발견과 '요아힘스탈러'의 탄생
시간을 거슬러 16세기 초, 1516년의 유럽으로 가보겠습니다. 당시 보헤미아 왕국(현재의 체코)의 깊은 산속 계곡인 '요아힘스탈(Joachimsthal)'이라는 곳에서 거대한 은광이 발견되었습니다. 'Thal(탈)'은 독일어로 '계곡'을 뜻하니, 요아힘스탈은 '성 요아킴의 계곡'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질 좋은 은이 쏟아져 나오자, 당시 영주였던 슐릭 백작은 1519년부터 이곳의 은을 캐내어 은화를 주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은화는 순도가 높고 무게가 일정하여 상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은화를 생산된 지명의 이름을 따서 '요아힘스탈러(Joachimsthaler)'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상거래를 할 때마다 "요아힘스탈러 하나 주시오"라고 말하기에는 이름이 너무 길고 불편했습니다. 성질 급한 상인들은 앞글자를 뚝 잘라내고 뒷부분인 '탈러(Thaler)'라고 줄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달러의 직계 조상인 '탈러'의 탄생입니다.
2. 유럽을 넘어 신대륙으로 : 탈러에서 달러로
순도 높은 은화 '탈러'의 명성은 국경을 넘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화폐의 대명사가 되면서, 각 나라에서는 너도나도 이 '탈러'를 모방하여 자신의 나라 발음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탈레로(Tallero)', 네덜란드에서는 '달더(Daalder)',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달레르(Daler)'가 되었습니다. 이 단어가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발음이 조금 더 굴려져, 마침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달러(Dollar)'라는 영어 단어로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즉, 미국 건국 훨씬 이전부터 '달러'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도 등장할 만큼 '양질의 은화'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3. 미국은 왜 익숙한 '파운드'를 버렸을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어를 쓰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영국의 화폐 단위인 '파운드(Pound)'를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왜 굳이 다른 나라 말에서 유래한 '달러'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을까요?
여기에는 미국의 강력한 '독립 의지'가 숨어 있습니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특히 토머스 제퍼슨은 신생 국가 미국이 옛 지배국인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화폐 단위를 그대로 '파운드'로 쓴다면 경제적으로 영원히 영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북미 식민지에서는 영국 화폐보다 스페인 식민지(멕시코 등)에서 만들어진 '스페인 달러(Spanish Dollar, 8레알 은화)'가 훨씬 더 많이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품질이 좋고 구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현실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면서도, 영국의 색채를 지울 수 있는 이름인 '달러'를 1785년 공식 화폐 단위로 채택하게 됩니다. 체코 산골 마을의 이름이 신대륙의 공식 통화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4. 미스터리한 기호 '$'의 비밀
달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S'자에 수직선이 그어진 '$' 기호입니다. 달러(Dollar)의 첫 글자는 'D'인데, 왜 기호는 'S' 모양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스페인 국장 유래설'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초기 미국에서는 스페인 은화가 널리 쓰였습니다. 이 스페인 은화 뒷면에는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기둥 두 개가 그려져 있고, 그 기둥을 'Plus Ultra(보다 더 멀리)'라고 적힌 리본이 감싸고 있는 문양이 있었습니다. 기둥(I)을 리본(S)이 감고 있는 이 모양을 간단하게 그려 장부에 표기하다 보니, 두 줄이 그어진 '$' 모양(초기엔 두 줄, 현대엔 편의상 한 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설로는 미국의 국호인 'United States'의 약자 U와 S를 겹쳐 썼다는 설도 있습니다. U의 밑부분이 사라지면서 두 줄 그은 S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5. 마치며 : 이름은 빌려왔지만, 가치는 스스로 만들다
체코의 요아힘스탈 계곡에서 시작된 은화 '탈러'는 유럽 상인들의 주머니를 거쳐,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개척자들의 손에 들어갔고, 마침내 세계 경제를 호령하는 '미국 달러'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달러의 역사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성격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름의 뿌리는 구대륙(유럽)에 두고 있지만, 영국의 파운드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낸 그 혁신성 말입니다. 비록 이름은 체코에서 빌려왔지만, 그 이름에 '전 세계가 신뢰하는 가치'를 부여한 것은 미국 스스로의 힘이었습니다.
이제 지갑 속에, 혹은 여행지에서 달러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 초록색 지폐 뒤에 숨겨진 500년 전 체코 산골 마을의 은광과 대서양을 건너온 모험의 역사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