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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puccino 어원, 커피 이름이 '금욕적인 수도사'의 두건에서 유래한 사연

by purevanillacookie 2026. 1. 2.

한국은 가히 '커피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커피 사랑이 대단합니다. 점심 식사 후 손에 커피 한 잔을 들고 거리를 걷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카노나 라테도 좋지만, 찬 바람이 불 때면 풍성한 우유 거품 위에 시나몬 가루가 솔솔 뿌려진 따뜻한 '카푸치노(Cappuccino)' 한 잔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의 이름이, 평생 청빈과 금욕을 맹세하며 거친 옷을 입고 살았던 가톨릭 '수도사'들에게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심지어 그 유래가 이탈리아가 아닌 오스트리아의 전쟁터와 관련이 있다면 더더욱 놀라실 겁니다.

 

오늘은 도심의 세련된 카페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카푸치노라는 이름 속에 담긴 성스러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Cappuccino 어원, 커피 이름이 '금욕적인 수도사'의 두건에서 유래한 사연

1. 뾰족한 두건을 쓴 수도사들, '카푸친 작은 형제회'

카푸치노의 어원을 찾기 위해서는 16세기 이탈리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가톨릭교회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따라 청빈한 삶을 실천하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라는 수도회가 있었습니다.

 

이 수도회 소속 수도사들은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아주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는 바로 그들이 입던 '갈색 수도복'이었습니다. 염색하지 않은 거친 갈색 천으로 만든 옷 뒤에는 뾰족하고 큰 '두건(Hood)'이 달려 있었는데, 이탈리아어로 두건을 '카푸초(Cappuccio)'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뾰족한 두건(카푸초)을 쓰고 다니는 이 수도사들을 보며 '카푸치니(Cappuccini)'라고 불렀습니다. 즉, '두건을 쓴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훗날 커피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2.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과 '비엔나 커피'의 탄생

그렇다면 왜 커피에 수도사들의 이름이 붙었을까요? 여기에는 1683년, 유럽의 운명을 건 '제2차 빈 포위 전투'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당시 오스만 튀르크(지금의 튀르키예) 제국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Vienna)을 포위하고 유럽을 집어삼키려 했습니다. 이때 기독교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카푸친 수도회 소속의 '마르코 다비아노(Marco d'Aviano)' 수도사였습니다.

 

전쟁은 연합군의 극적인 승리로 끝났고, 도망친 오스만 군대는 막대한 양의 군수품을 버리고 갔습니다. 그중에는 유럽인들이 처음 보는 '커피 원두' 자루가 가득했습니다. 빈의 시민들은 이 검은 콩을 끓여 마셔보았지만, 너무 쓰고 진해서 도저히 그냥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쓴 커피에 우유와 꿀(혹은 크림)을 섞어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커피의 색깔이 짙은 검은색에서 부드러운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색깔이 마치 전쟁 영웅인 마르코 다비아노 수도사가 입고 있던 '갈색 수도복' 색과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빈 사람들은 수도사에 대한 존경을 담아(혹은 그저 색깔이 비슷해서) 이 음료를 독일어로 '카푸치너(Kapuziner)'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비엔나커피의 원형이자, 카푸치노의 조상입니다.

3. 이탈리아로 건너가 완성된 오늘날의 'Cappuccino'

오스트리아 빈에서 탄생한 '카푸치너'는 20세기에 들어와 이탈리아로 건너가면서 현대적인 모습으로 완성됩니다. 19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증기압을 이용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발명되면서 커피 문화에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나오는 강력한 스팀으로 우유 거품을 풍성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에스프레소(진한 갈색) 위에 하얀 우유 거품을 둥글게 얹은 모습은,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마치 '정수리 부분만 동그랗게 삭발한 수도사의 머리'와 같았고, 갈색 커피와 흰 거품이 섞인 색은 영락없는 '카푸친 수도복' 색깔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이탈리아식 이름인 '카푸치노(Cappuccino)'가 공식 명칭으로 굳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4. 마치며 : 쓴맛과 단맛의 조화

가장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수도사들의 이름이,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이 가장 여유롭고 사치스러운 휴식을 즐길 때 마시는 커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카푸치노라는 이름 속에는 에스프레소의 '쓴맛(고행)'과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구원)'이 공존하는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드신다면, 갈색 거품 속에 숨겨진 17세기 수도사의 두건과 승전의 역사를 한번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