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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get, 수백조 원의 국가 예산이 고작 '작은 가죽 가방'에서 나왔다고?

by purevanillacookie 2025. 12. 31.

매년 연말이 되면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예산(Budget)'입니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었느니, 지각 처리되었느니 하는 소식을 들으면 수백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오고 갑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 살림살이를 꾸리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가계부 예산'을 짭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Budget'은 복잡한 숫자, 골치 아픈 계획, 혹은 거대한 돈뭉치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무게감 있는 단어의 기원이 사실은 동전 몇 닢 넣고 다니던 허름한 '가죽 주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거대한 국가 살림살이를 뜻하는 단어가 어떻게 작은 가방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흥미로운 언어의 발전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Budget, 수백조 원의 국가 예산이 고작 '작은 가죽 가방'에서 나왔다고?

1. 프랑스어 'Bougette' : 허리춤에 찬 작은 주머니

'Budget'의 어원은 중세 프랑스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사람들은 가죽으로 만든 자루나 주머니를 '부주(Bouge)'라고 불렀습니다. 이 'Bouge'에 '작다'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ette'가 붙어, '부제트(Bougette)'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즉, '부제트'는 문자 그대로 '작은 가죽 주머니''소지품 주머니'를 뜻했습니다. 여행자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동전 몇 닢이나 중요한 문서, 작은 귀중품 등을 넣는 용도로 사용했죠. 이때까지만 해도 이 단어에는 거창한 재정 계획이라는 의미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물건을 담는 소박한 '용기(容器)'일 뿐이었습니다.

2. 영국 의회로 건너간 가방 : "예산을 열다"

프랑스의 작은 주머니 '부제트'는 바다 건너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버짓(Budget)'이라는 영어 발음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18세기 무렵, 이 단어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당시 영국의 재무장관은 매년 의회에 출석하여 다음 해의 국가 재정 계획과 세금 정책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이때 장관은 관련된 중요한 서류들을 묵직한 '가죽 가방(Budget)'에 담아왔습니다. 그리고 의원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하며 그 가방을 열어 서류를 꺼냈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재무장관이 재정 정책을 발표하는 행위 자체를 "가방을 연다(Opening the budget)"라고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가방(용기) 자체보다는 그 가방에서 나오는 '내용물', 즉 '국가의 재정 계획서나 수입·지출 내역'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화하게 된 것입니다.

3. 빨간 가방의 전통 : 300년을 이어온 Budget Box

이러한 어원의 흔적은 오늘날 영국 의회의 전통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지금도 매년 '예산의 날(Budget Day)'이 되면 재무장관이 다우닝가 11번지 관저 앞에서 빨간색 가죽 서류 가방을 높이 들어 올려 기자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합니다.

 

'빨간 가방(Red Box)'이 바로 현대판 'Budget'입니다. 1860년 윌리엄 글래드스톤 재무장관이 처음 사용한 이래로 수많은 장관이 대를 이어 사용하며 영국 재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너무 낡아서 2010년에 새것으로 교체되기는 했지만,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수백조 원의 예산안도 그 시작은 재무장관의 손에 들린 작은 가죽 가방이었던 셈입니다.

4. 마치며 : 중요한 건 가방 속의 계획

작은 가죽 주머니에서 시작된 단어 'Budget'은 이제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한 가정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어원을 알고 나니 골치 아프게만 느껴졌던 '예산 짜기'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나요? 우리가 매월 가계부를 보며 예산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미래를 담을 튼튼한 '가죽 주머니'를 만드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가방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계획과 꿈을 담느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