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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 어원, 지도책의 이름이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은 거인?

by purevanillacookie 2026. 1. 10.

학창 시절, 사회나 지리 시간에 펴보았던 두꺼운 지도책을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이 세계지도 묶음을 '아틀라스(Atlas)'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해부학 아틀라스, 건축 아틀라스처럼 어떤 분야의 그림이나 도표를 모아놓은 책을 통칭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도를 모아놓은 책에 '아틀라스'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이 이름의 주인공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티탄(Titan)' 신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영광스러운 신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영원히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는 죄인이었습니다.

오늘은 거인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어떻게 인류의 길을 안내하는 지도책의 이름이 되었는지, 그 신화와 역사의 연결 고리를 찾아가 봅니다.

Atlas 어원, 지도책의 이름이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은 거인?

1. 제우스에게 도전한 대가 : 영원한 형벌

아틀라스의 비극은 올림포스 신들의 세대교체 전쟁인 '티타노마키아(Titanomachy)'에서 시작됩니다. 제우스가 이끄는 올림포스 신들과, 크로노스가 이끄는 거인족 티탄 신들은 세상의 패권을 두고 10년간 치열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때 아틀라스는 티탄 족의 선봉장으로 나서 제우스 군대와 맞서 싸웠습니다. 엄청난 괴력을 지닌 그는 제우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결국 제우스의 승리로 끝났고, 패배한 티탄들은 지하 감옥 타르타로스에 갇히게 됩니다.

제우스는 적장인 아틀라스에게는 가두는 것보다 더 가혹한 특별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바로 세상의 서쪽 끝으로 가서 "무너져 내리려는 하늘(천구)을 영원히 어깨로 떠받치고 서 있어라"는 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쉴 새 없이 어깨와 머리로 무거운 하늘을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팩트 체크 : 아틀라스는 지구를 들고 있다?

우리는 흔히 아틀라스가 둥근 '지구'를 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동상이나 로고에서 그가 지구본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화의 원전에 따르면 그가 짊어지고 있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하늘(Uranus)', 즉 '천구(Celestial Sphere)'입니다. 고대인들은 하늘이 돔 형태의 뚜껑이라고 생각했고, 아틀라스가 그 뚜껑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게 받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후대에 미술가들이 둥근 천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지구본처럼 묘사되면서 생긴 오해입니다.)

3. 메르카토르의 지도책, 거인의 이름을 빌리다

하늘을 들고 벌을 서던 거인의 이름이 '지도책'이 된 것은 16세기 지리학의 거장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 덕분입니다. 우리에게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1595년, 메르카토르는 평생을 바쳐 제작한 세계지도 모음집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이 책의 표지에 '지구 전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는 아틀라스'의 삽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제목을 《아틀라스(Atlas)》라고 붙였습니다.

메르카토르는 아틀라스를 단순히 벌 받는 죄인이 아니라, 우주의 구조를 통달한 현명한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의 왕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책이 전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후 모든 지도책을 관용적으로 '아틀라스'라고 부르는 전통이 생겨난 것입니다.

4. 아프리카의 척추, 아틀라스산맥

아틀라스의 흔적은 지도책뿐만 아니라 실제 지명에도 남아 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해 아틀라스를 돌로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무나 힘들어하던 아틀라스가 차라리 돌이 되어 쉬고 싶다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거대한 바위산으로 변한 아틀라스의 몸이 바로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알제리에 걸쳐 있는 '아틀라스산맥(Atlas Mountains)'입니다. 그리고 그 산맥 너머에 있는 거대한 바다라는 뜻에서 '대서양(Atlantic Ocean)'이라는 이름도 탄생했습니다.

5. 마치며 : 무거운 짐을 진 자의 위로

그리스 신화 속 가장 힘센 거인 아틀라스는 비록 패배자였고 영원한 형벌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이름은 인류가 세상의 길을 찾을 때 가장 먼저 펼쳐보는 책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날, 아틀라스의 어원을 떠올려 보세요. 온 우주의 무게를 홀로 견뎌내야 했던 그 거인의 고독한 어깨가, 지도책이 되어 오늘날 우리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위로가 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