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하면 솔직히 히피 문화가 먼저 떠오릅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던 그 장면들처럼요. 자유를 외치는 건 이해하는데, 책임과 의미는 내팽개친 채 마약과 방종으로 흘러간 모습들이 솔직히 무분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1968년, 전 세계는 기성세대가 쌓아 올린 견고한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청년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유례없는 풍요 속에서 성장한 '베이비붐 세대'는 물질적 안락함 대신, 사회 곳곳에 뿌리 박힌 권위주의와 위선, 그리고 억압적인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대학가에서 시작된 바리케이드 투쟁은 순식간에 노동자 총파업으로 번졌고, 대서양 건너 미국의 격렬한 반전 운동과 흑인 민권 운동, 철의 장막 너머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인 저항의 불길로 타올랐습니다. 이 글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도발적인 슬로건 아래 자본주의의 인간 소외와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관료주의적 통제에 맞섰던 1968년의 거대한 문화적 폭발 과정을 추적하고, 그것이 오늘날의 페미니즘, 환경 운동, 다원주의 사회에 남긴 깊은 유산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풍요의 그늘과 베트남 전쟁: 폭발하는 불만
1960년대 후반, 서구 세계는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정점에 달하며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대학에 입학한 젊은 세대(베이비부머/68세대)가 마주한 현실은 숨 막히는 모순덩어리였습니다. 대학과 공장, 가정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짓눌려 있었고,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는 인간을 거대한 소비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청년들은 부모 세대가 이룩한 경제적 성공 이면에 도사린 정신적 공허함과 구조적 불평등을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재되어 있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것은 '베트남 전쟁'이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으로 생중계된 전쟁의 참상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강대국의 명분이 추악한 제국주의적 폭력에 불과함을 폭로했습니다. 미국의 청년들은 징집영장을 불태우며 거리로 뛰쳐나와 "사랑을 하되 전쟁은 하지 말라(Make love, not war)"고 외쳤습니다. 1968년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가 연이어 암살당하며 절망과 분노가 극에 달한 해였고, 억눌렸던 에너지는 마침내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는 전 지구적 연대와 저항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파리의 5월, 상상력이 권력을 잡다
1968년 혁명의 진앙지는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3월, 파리 교외의 낭테르 대학교 학생들이 기숙사 방문 제한 등 억압적인 학칙 철폐와 교육 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경찰을 투입해 대학을 폐쇄하고 강경 진압에 나서자, 분노한 학생들은 파리 시내의 소르본 대학과 라탱 지구를 점거하고 거리의 보도블록을 뜯어 바리케이드를 쌓았습니다. 최루탄 연기와 화염병이 난무하는 격렬한 시가전이 연일 계속되었고, 이것이 이른바 '68 운동(프랑스의 5월)'의 시작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저항은 곧 노동계급의 거대한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학생들과 연대하여 총파업을 선언하자, 프랑스 전역에서 무려 1,000만 명이 일손을 놓았습니다. 공장은 멈췄고 교통은 마비되었으며, 드골 대통령이 위기를 느껴 잠시 해외로 피신할 만큼 국가 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시위대는 "상상력에게 권력을!", "모든 권위를 거부한다", "현실적이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와 같은 시적이고 급진적인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효율성과 경쟁 논리만이 지배하는 산업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꿈꿨습니다.
동서양을 가로지른 저항의 도미노
68년의 저항 정신은 서유럽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철의 장막 너머 동유럽에서도 스탈린식 관료주의와 독재에 맞선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건 알렉산데르 두브체크의 개혁 운동, 즉 '프라하의 봄'이 만개했습니다. 비록 소련군의 탱크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지만, 이는 공산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르고 있음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반전 운동과 흑인 민권 운동, 그리고 히피 문화가 결합하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습니다.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 밖에서는 전쟁 반대 시위대와 경찰의 유혈 충돌이 생중계되었고, 컬럼비아 대학을 비롯한 전국의 캠퍼스는 학생들의 점거 농성장으로 변했습니다. 서독에서는 나치 부역 청산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 일본에서는 대학의 군국주의적 통제에 반대하는 전공투의 격렬한 투쟁이 전개되었습니다. 1968년, 전 세계의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모든 낡은 질서'라는 공통의 적을 향해 동시에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정치적 미완, 그러나 영원한 문화 혁명
역설적이게도 1968년 혁명은 단기적인 정치 권력 장악에는 실패했습니다. 혼란에 지친 보수적인 중산층은 안정을 택했고, 그해 치러진 선거에서 프랑스의 드골파와 미국의 닉슨 등 보수 세력이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거리의 바리케이드는 철거되었고,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갔으며, 프라하의 봄은 짧은 꿈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68혁명을 실패한 역사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던진 돌멩이는 권력의 핵심부는 비껴갔을지언정, 사람들의 '의식'과 '일상'이라는 더 깊은 토양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권위주의적인 가족, 학교, 직장 문화가 급격히 해체되었고, 여성 해방(제2물결 페미니즘), 환경 보호, 성소수자 인권, 인종 차별 철폐 등 현대 사회의 핵심 가치들이 본격적으로 싹텄습니다. 수직적 명령 대신 수평적 연대를, 획일성 대신 다양성을 존중하는 오늘날의 다원주의 사회는 바로 1968년의 유산 위에 서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1968년은 인류의 현대사가 억압적인 '과거'와 결별하고 자유로운 '미래'로 이행하는 거대한 분수령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이상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했지만,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던 그 뜨거운 외침은 우리 사회를 옥죄던 수많은 금기를 깨뜨리는 망치가 되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부당한 권위에 맞서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든 곳에서 1968년의 혁명 정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자유를 외치면서 정작 책임은 저버리는 모습은 어느 시대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혼란 속에서 여성 인권, 환경 운동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 싹텄다는 건, 이 시대가 마냥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