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저는 웹소설이라는 장르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가족 간 로맨스 설정에 상당히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저 그런 빙의물만 계속 보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작품이 바로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2016년 첫 연재를 시작해 107회 차로 완결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신작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빙의 웹소설의 새로운 공식을 제시하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전형적인 빙의물 공식(formula)을 깨뜨렸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공식이란 웹소설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의 빙의물이 주인공이나 여주로 빙의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단명할 엑스트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박은하는 현실에서 재수생으로 살다가 의문의 추락사로 사망한 뒤, 소설 속 레리아나 맥밀런의 몸에 빙의하게 됩니다. 문제는 레리아나가 약혼자에게 독살당해 곧 죽을 운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원작에서 레리아나의 죽음은 여주가 귀국하는 계기가 되는 일종의 서사적 장치(narrative device)였습니다. 서사적 장치란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사건이나 인물을 뜻합니다.
저는 처음 이 설정을 봤을 때 '드디어 엑스트라 관점의 생존기가 나왔구나' 싶었습니다. 실제로 레리아나는 죽지 않기 위해 약혼 파기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소설의 남주인 노아 윈나이트 공작에게 계약 약혼을 제안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합니다.
반전 결말이 만들어낸 충격과 쾌감
이 작품의 진짜 백미는 중반부터 등장하는 반전의 연속입니다. 특히 원작 여주 베아트리스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착하고 순수할 것으로 예상되던 베아트리스가 급작스럽게 악녀로 변모하는데, 그 이유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현재의 베아트리스가 원래 레리아나의 영혼이었고, 원래 레리아나는 흑마법을 통해 베아트리스의 몸으로 이동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소울 스와핑(soul swapping)이라고 하는데, 두 인물의 영혼이 서로 바뀌는 설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비어있던 레리아나의 육체에 재수생 박은하가 빙의한 구조였습니다.
저는 이 반전을 읽으면서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단순한 빙의물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사실은 훨씬 복잡한 영혼의 이동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반전을 해결하는 과정이 답답한 고구마가 아니라 시원한 사이다 전개로 이어졌습니다.
결말에서 레리아나는 베아트리스가 씌운 살인 누명을 대신관의 도움으로 벗게 되고, 결국 베아트리스를 직접 처단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흑마법의 대가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운명적 제약(fatalistic constraint)이 있었는데, 이런 운명적 제약이란 등장인물이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조건을 뜻합니다.
107회 차 완결의 아쉬움과 지속되는 영향력
제가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은 바로 작품의 분량입니다. 최근 웹소설들이 평균 150회 차를 넘어가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107회 차로 완결되었습니다. 레리아나와 노아의 관계가 계약에서 진심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더 보고 싶었지만, 작가는 깔끔하게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 푹 빠져서 여러 번 재독했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복선과 장치들이 보였습니다. 특히 서브 남주의 등장과 노아가 점차 레리아나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작품이 완결된 후에도 저는 혹시 외전이 추가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틈틈이 작품 페이지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이 작품의 영향력은 단순히 웹소설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웹툰으로 제작되었고, 이후 게임과 애니메이션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2016년 첫 연재 당시만 해도 이 정도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 확장을 예상하기 어려웠는데,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작가 밀차의 다른 작품을 찾아봤지만, 한참 뒤에 나온 '병아리반 헌터는 효도 중!'은 육아물이라 제 취향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육아물은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다 보니 서사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중도에 포기하게 되더군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은 제게 빙의물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접하는 모든 빙의 웹소설을 이 작품과 비교하게 되었고, 대부분은 이 작품만큼의 반전과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엑스트라 빙의라는 참신한 설정, 예측 불가능한 반전, 그리고 시원한 결말까지, 이 세 가지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었습니다.